1.시조:안자미(安子美)
순흥안씨의 시조는 자미(子美)로 그는 고려 신종(神宗)때 흥위위보승별장을 지냈으며 후에 신호위상호군(神號衛上護軍)에 추봉된다.
순흥안씨는 子美의 세아들 영유(永儒:一派)·영린(永麟:二派)·영화(永和:三派) 3파로 대별된다.
▶ 죽산안씨(竹山安氏)의 시조는 당나라 출신 이원(李瑗)의 장남 안방준(安邦俊)이다.
이원은 신라 애장왕때 건너와 정착했으며 지춘(枝春),엽춘(葉春),화춘(花春)의 세아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경문왕 때 왜구를 무찌른 공으로 안씨성을 하사 받았으며 지춘은 방준으로 개명하고 죽산군(竹山君)에 봉해졌다.
▶ 광주안씨(廣州安氏)의 시조는 고려의 대장군 방걸(邦傑)로 그는 광주(廣州) 지방의 반란을 진압한 공으로 대장군에 오르며 광주군에 봉해져 광주(廣州)를 본관으로 하였다.
성씨를 갖게 된 유래는 당시에 성씨가 없었으나 태조(太祖)가 후삼국을 통일한 후 지방 유력자들에게 성씨를 갖게 하는 정책에 따라 안씨(安氏) 성을 갖게 되었다.
▶ 탐진안씨(耽津安氏)는 순흥안씨 시조 자미(子美)의 6세손인 목(牧)의 셋째아들 원린(元璘)을 시조로 하는데, 원린(元璘)의 아들 우(祐)가 홍건적의 침략을 막은 공으로 오성군(오성은 탐진(耽津)의 옛이름)에 봉해진 뒤 탐진을 본관으로 하여 분관 하였다.
▶ 신죽산안씨(新竹山安氏) 역시 안목(安牧)의 둘째아들로 죽성군(竹城君)에 봉해진 원형(元衡)을 시조로 하여 순흥안씨(順興安氏)에서 분관(分貫)하였다.
탐진안씨(耽津安氏)와 신죽산안씨(新竹山安氏)는 각각 순흥안씨의 탐진군파와 죽성군파로 불리기도 한다.
2.유래
1170년 고려 의종(毅宗) 24년 (경인 庚寅)에서 1180년 명종(明宗) 10년(경자 庚子)사이에 경북 순흥(慶北順興= 當時 順安縣)에서 탄생(誕生)하신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신종(神宗) 때 흥위위(興威衛) 보승별장(保勝別將)을 지내시고 문성공(文成公) 안향(安珦)의 귀현(貴顯)으로 인하여 신호위(神虎衛) 상호군(上護軍)을 추봉(追封) 받으셨다.
묘(墓)는 본시 순흥 소백산하(小白山下)에 모셨는데 묘의 표식물이 없어서 찾을 수가 없다.
그런데 후손 기명(基命)이 주관 발간한 갑신파보(甲申派譜) 즉 1824년 간행된 순흥안씨 3파댁 파보를 보면 진위 종인의 가첩에 우리 시조에 관하여 몇 가지 지적 기록된 사실을 알게되어 당시 종중에서 확실한 고증을 얻어 보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다는 것이다.
시조의 묘는 순흥부 동 영마암(東永磨巖)에 있고 부인은 압해정씨(押海丁氏) 추밀부사(樞密副使) 광서(光瑞)의 녀(女) 운운(云云)이나 전보에 기록이 없고 당시 영천 정원욱(丁元旭)이 보존한 구보(舊譜)를 열람한 바 “문하시중평장사태보내사령(門下侍中平章事太保內史令)혁황(奕煌)-여(女) 안자미(安子美)”로 등재 돼 있고 그 외손(外孫)난에 2세 추밀공(樞密公, 3세 태사공(太師公),4세 문성공의 휘자(諱 啣)이 연계 등재돼 있으나 신중한 일로써 직서불가(直書不可)하여 이에 응창 단기(應昌 壇記)를 기록(記錄)해둔다. 는 뜻을 족보(族譜) 기록에 남겨두고 있다.
3.시조이전의 역사
시조 공의 이전에도 우리 선대가 계셨을 터인데 시조 이래, 후손들이 그곳 순흥에서 세거하였기에
관향으로 삼은 것이다. 처음으로 간행된 족보에는 시조 이전에 대하여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
여기에 대하여 이 족보(병오보)의 서문에서는 기록할 수 없었던 사유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다만 한스러운 것은 시조 이전의 가첩(家牒)이 전해 내려 온 것이 없어서 기록을 다하지 못하니
이런 점이 오늘날 한 없이 슬프다. 지금 수보(修譜)하지 않으면 장차 어찌 될 것인가" 이로보아 당시의 그 선조님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족보가 간행된지 벌써 450년이 가까워 오는데도 시조 이전의 역사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록이나 유물이 발견하지 못하니 우리 순흥안씨는 시조 공의 탄생 연대로부터 지금까지 8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시조 상호군의 연대에 대하여 일부 문헌에는 남송 순희(南宋淳熙) 9년 즉 고려 명종(明宗) 12년(1182)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문중(門中)에 전해오는 족보와 회헌실기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이것에 의하면 위에 말한 벼슬을 하고 추봉을 받은 일이 있고, 또 큰 아드님이신 추밀원부사 휘 영유께서
신종(神宗) 4년 신유(辛酉)(1201)생으로 되어있다. 또 3세 태사공(太師公) 휘 부(孚)께서는 1220년에
3파 5세 밀직제학공(密直提學公) 휘 석(碩)께서는 1260~1267년에 탄생하신 것으로 추측되니 시조 공께서는
의종 24년(1170년)부터 명종(明宗) 10년(1180년)사이에 탄생하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4.시조의 묘소
묘소는 순흥의 소백산 아래에 있다고 전해오나 찾지 못하고, 순원군 응창공(應昌公)께서 1647년 평리촌에 시조공의 제단을 마련하고 향려단과 세연지비(洗硯地)등을 건립했다.
무오년에 후손 종욱, 상봉, 교덕이 사단비를 세우고, 추원재(追遠齋)를 이건했음을 총록에 기록되어 있다.
순흥(順興)의 시조사단 이전 중건사업은 1985년부터 시작했다.
전국(全國)의 종원 5.000여명이 성금(誠金)을 기탁(寄託)하여 순흥면 읍내리의 비봉산 43,000평을 종산(宗山)으로 매입하고 그곳에 시조단(始祖壇) 과 후손(後孫) 11基(기),추원단비 등을 건립하고 성역화(聖域化)하였다.
시조께서는 고려 신종(神宗)때 군 수뇌부(軍首腦部) 흥위위 보승별장(興威衛 保勝別將=현재 군장성급)을 지내시고, 신호위 상호군(神虎衛上護軍=현 군 고위장성급)을 추봉 받으신 존엄한 어른이셨다.
5. 순흥안씨 계파
<<1파 => 14개파>>
1) 참찬공파 : 파조 玖(구)
2) 찬성공파 : 파조 璟(경)
3) 직장공파 : 파조 琇(수)
4) 서파공파 : 파조 理(리)
5) 감찰공파 : 파조 從禮(종례)
6) 첨추공파 : 파조 從義(종의)
7) 도정공파 : 파조 從廉(종렴)
8) 참판공파 : 파조 從信(종신) 후손 안 중근
9) 참의공파 : 파조 從儉(종검) 후손 안창호
10) 부제학공파 : 파조 祖同(조동)
11) 한림공파 : 파조 垂(수)
12) 죽성군파 : 파조 元衡(원형) 신죽산안씨 시조
13) 탐진군파 : 파조 元璘(원린) 탐진안씨 시조
14) 판관공파 : 파조 愼(신)
<<2파 => 4개파>>
1) 안원군파 : 파조 處(처)
2) 충정공파 : 파조 俊(준)
3) 의랑공파 : 파조 天鳳(천봉)
4) 소의공파 : 파조 天保(천보)
<<3파 => 4개파>>
1) 문정공파 : 파조 軸(축)
2) 제주공파 : 파조 輯(집)
3) 중랑장공파 : 파조 乙壽(을수)
4) 검교공파 : 파조 得仁(득인)
'생활정보 > 생활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세계에서 가장 작은 공원, 밀엔즈공원 (0) | 2013.07.04 |
---|---|
컨벤션 효과 (0) | 2012.08.18 |
초근목피 (草根木皮) (0) | 2009.11.03 |
모기가 싫어하는 것들! (0) | 2009.07.01 |
감식초의 효능 및 제조법 (0) | 2009.06.14 |